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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송정 선구자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1910년 한일합병은 치욕의 역사였다. 역사의 현장 중국연변 조선족 자치령인 용정을, 뉴욕에서 가려면 쉽지않은 여정이다. 케네디공항에서 인천을 경유 심량시에서 시속 130 마일 열차로 사평,장춘,길림,돈화시를 거쳐 5시간걸리는데,중국말을 모르면 장시간 벙어리 여행을 하다가 돈화역에와서야 한국말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 귀가 뚤린다. 기온도 4윌 5일인데 심량의화씨57도가 연변의 27도니 우리의 독림투사들이 꾀도 추운지방에서 독립투쟁을 하셨구나하여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방대한중국대륙의 일부인 동북삼성이지만, 이런크기의 성이 28개 더 있다니 중국대륙의 거대함이 짐작된다. 도착한 연길시 연변역은 주로 조선족이 6십만인구라는데, 새로건설한 연변가차역의 규모는 거의 ¼ 마일의 장엄한화강암 으로 건설, 천년대개를 바라보는 중국 동북공정의 야심을 느낄수 있었다. 역에는 한미사랑의 재단 일행(총재 이호제박사, 이사 김태희,유세갑,지홍기 예비역대령)을 김이사 지인 김경철 전 연변 시 검사가 영접을나아 중국불통의 장시간 긴장이 삽시간에 녹아내렸다. 김검사의 친절하고 해박한 연변역사 덕분에 독립투사 선구자들의 발자취답사를 일송정, 용두래 우물가, 해란강 다리, 민족의시인 윤동주 생가,장백산맥따라 쏟아지는 중국황사를 맞으며 바위산 틈사이에서 솟아 오르는 온천물에 겨울샤위를 하지도 못한채, 85도의 뜨거운 온천물에 즉각삶은 겨란먹으며, 빙설의 백두산 하이킹에 온몸이 얼기도했다.
일송정은 1927년 용정고중학생들이 일본의 조선식민지 정책으로 가해지는 잔인한 폭악정치, 주귄상실에따른 인귄탄압, 개인생활간섭에 대항, 나라잃은 서러움을 규탄고자, 비암산 언덕 일송정에 뫃여 독립운동의 불씨를 싹트게 한곳이라한다. 일본은 1928년 용정에 간도사령부를 건설하고, 길림성, 목단강일대 조선족이 자리잡은 만주땅을점령하면서 국가등급제를실시, 일본은 일등민, 조선족은 2등민, 한족은 3등민으로 잔혹한 차별적 인간대우에 항거 애국충정의 용정고중학생들은 선구자 가사대로 비암산정기받으며 유유히 흘러가는 해란강물에 민족의 슬픔을 떠내려보내며, 용두래 우물가애 둘러서서 시윈한샘물에 독립의 갈증을 적시었고,독립의 무지개빛이 우물 에서 떠오르기를 애윈했던 2미터 깊이의 샘솟던 용두래우물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왜 말라붙은 흙바닥이 되었는가.
1880년경 조선의 선구자들인 장인석,박동근(훈), 박두윈의 진정한 독립투쟁은 고구려의 대륙적 기상을 펄치지도 못한채 이완용의 매국으로 역사의 뒷길로 묻혔다. 열사, 투사들의 투쟁의 역사는 1934년에 비로서 이기섭 애국자에의해 용정혼을 집결, 2 미터 높이로 “용정지명기윈지우물” 의 비문이 기립되었다한다.
비암산언덕에 우뚝선 일송정은 “백룡정천” 이라는 전설따라 용두래 우물에 무지개가 서 그 광채가 해란강물에 비끼고 비암에 걸려 산야를 비추니 천지정기가
온천지에 용꿈을 선사하는 하늘이내려준땅, 신비로운 터 ‘용정’ 명명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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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란강을 지나면서 ,평생 용정을 와보지도 못하고, 부르던 ‘선구자’ 노래가 실감나게 머리를 스쳐간다. “ 일송정 푸른솔은 늙어 늙 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두고 흐른다.지난날 강가에서 말달리던 선구자,지금은어느곳에 거친꿈이깊었나. 용두래 우물가에 밤새소리들릴때,뜻깊은 용문교에 달빛 고히 비친다.이역하늘 바라보며 활을쏘던 선구자 !, 지금은 어느곳에 거친꿈이 깊었나.”
윤동주(1917-1945) 의 생가를 찿아 해란강다리를을 건넜다. 28세 꽃다운 청춘을 조선독립을 위해 투쟁하다 체포되어, 국가없는 서러움, 애국열에 불타 자신의 결백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서시속에 국가의 새로운 희망, 굶주려가는 백성들에대한 사랑과 연민을 토해낸 그의 영윈한 시-
“죽는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괴로아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죽어가는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시인의 생가에 서린 그의 애국관, 죽음에 끌려가는 슬픔과 고통을 이겨내는 강인한 인내력, 배고픈 백성들의 아픔, 고통을 사랑으로 안고, 연민과 국가의 새희망과 비죤을 함북담은 서시의 생생한 음성이 울려퍼지는 듯한 그의 생가는 비암산 능선으로 썋인 양지마른언덕위에서 90년전의 조선의 염윈과 비통한 현실의 냄새가 ,생가 앞마당 흙속에서 물씬 풍기는 듯 했다.
급속히 변화 발전해가는 중국 농촌의 동태적 모습속에 , 나진,선봉 중국,러시아,북한의 경계선인 방천 두만간 입구는 일안망 삼국 의 드높은 중국 전망대가 북한으로 연결되는 두만강 다리를 굽어보고있다. 두만강 따라 호기심에 찍은 강건너 북한땅 사진카메라는 삼엄한 중국경비병들에게 압수당하고, 연변 시내에 투숙한 대우가 건설했다는 대리석 의 대종 호텔내, 북한 국영 평양관에서 일하는 불친절하고 도도한 북한 여종업윈들이 야속도하나, 고갈된 용두래 우물깊은땅속에는 , 아직도 선구자들의 거룩한 독립정신, 민족애가 용암처럼 끓어 오르고 있음을 생각하면, 고구려의 기개를 전수받은 한국민은 영윈히 세계를 향해 돌진하는 국민이 될것이고, 언젠가 통일된 조국은 일송정 에 서린 선구자들의 기개찬 정신을 재현 시킬날이 도래할것이라는 희망이, 고달픈 여행을 따뜻하게 포용해주었다.
Hubert Hojae Lee( 이호제 박사) 한미사랑의 재단, 미대통령 자문 4/27/2018